[한경에세이] 백락은 어디에 있는가?

입력 2019-02-06 16:52  

고학찬 < 예술의전당 사장 kevingo@sac.or.kr >


요즘 사람들에게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느냐가 이른바 폼을 잡는 중요한 요소라면 옛날 사람들에게는 무슨 말을 타고 다니느냐가 그랬다. 그러니 명마를 고르는 말 감정사가 대단한 위치에 있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백락’이라는 당대 최고의 감정사가 살았다. 말 시장을 지나가다 어떤 말을 한번 돌아보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비싼 값에 팔리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백락일고(伯樂一顧)’다. 백락이 하루는 길에서 무거운 소금마차가 다가오는 것을 봤다. 가만히 보니 천한 마차를 끄는 비루먹은 말이 바로 천하의 명마가 아닌가! 백락은 그 말에게 “분명히 천리마인데 어찌하여 소금마차를 끄는가?”라고 물으니 말은 이내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는 고사가 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자. 대단한 인물인데도 백락을 만나지 못해 겨우 소금마차를 끌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불우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불우(不遇)란 말은 때와 사람을 잘못 만났다는 뜻이다. 불우 청소년, 불우 이웃 모두 때와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분들이다.

요즘 최고로 뜨는 ‘천리마’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그는 베트남에 가서 드디어 백락을 만났다. 한국 땅에서 쏟아지는 박수와 함성을 들으며 그는 아마도 기쁨보다 시련의 시간이 떠올랐을 것이다. 설을 쇠러 금의환향한 그의 사진을 보며, 미소 속에 담긴 시련의 굳은살도 느낄 수 있었다.

백락을 만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자칫 빛을 보지 못할 뻔한 TV 드라마가 다행히 백락을 만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사례가 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이나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최고의 걸작들도 당대에는 빛을 보지 못해 배고픈 예술가로 살다 간 작가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르네상스가 어떻게 꽃피웠는가? 배고픔과 멸시에 어려운 삶을 살던 예술가들에게 백락처럼 나타난 이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과연 백락은 그렇게 찾기 힘든 것일까? 혹시 우리 곁에 왔는데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혹은 엉뚱한 사람을 백락인 줄 알고 착각해 큰일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온 나라를 휘청하게 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인복과 인덕이라는 말이 있다. 인복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인덕은 스스로 쌓아 올리는 것이다. 인덕을 갖춘 사람에게 인복이 주어져야 진정한 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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